반말, 존댓말

<카이스트 대신 전해드립니다 2> 페이스북 페이지에 다음과 같은 글이 올라왔다.

한국어의 존댓말 체계에 대한 내 생각

나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쭉 한국에 살았다. 해외에 한 달 이상 체류한 적이 없다. 한국어는 나한테 모국어이고 익숙한 언어이고, 하루도 빠짐없이 읽거나, 듣거나, 말하고 쓰는 언어이다. 한국어에 대한 애정도 많다. 하지만, 언제부터 이런 생각을 가지게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한국어에서 가장 마음에 들지 않는 점이 하나 있다. 바로 존댓말 체계이다.

이 글을 쓰게 된 계기는 좀 길다. 중학교 시절로 돌아가 나에 대해서 생각해보자면 나는 그때부터 반항아적인 기질이 나타났고 지금도 많이 평등주의/개인주의 사상에 과격한 성향인 것 같다. 지금 돌아서 생각해보면 나의 개인주의적, 평등주의적 관점이 그때부터 점점 내면에서 자라나 그런 결과가 일어났다고 본다. 중학교 때 부터 나는 왜 학생이 선생보다 아래인 점에 대한 불만이 많았고, 이걸로 몇 번은 교무실에 간 것 같다. 나는 교무실로 불려갈 때마다 선생들이 나한테 어디가 잘못됐다고 말할 때마다 나는 마음속으로 반박을 생각했고, 겉으로만 사과하였다. 이럴 때 마다 나의 평등에 대한 관념과 가치관이 더 확고해졌다.

고등학교 때 시절로 넘어오자면 내가 다닌 고등학교는 전원 기숙사 학교였고 대한 영향인지 선후배 관계가 철저했다. 후배는 선배한테 만날 때 마다 안녕하세요. 선배님이라고 허리 인사를 해야 했다. 나는 1학년 때 어쩔 수 없이 이걸 따랐지만, 2학년이 될 때 이를 지키지 않았고, 3학년이 될 때 후배들한테 그렇게 인사할 필요가 없고 반말을 쓰라고까지 얘기했다. 나는 조기입학을 했는데 나이가 한 살 많은 대부분의 동기한테 아무런 거리낌 없이 친구처럼 반말을 써서 반발을 사기도 했지만 나는 이 뜻을 굽히지 않았다.

대학교 카이스트에 와서도 이 성향이 그대로 나타났고 약간 더 과감해졌다. 동아리에 들어와서도 동기들에게 나이 한 두 살 차이는 바로 무시하고 바로 초면에 반말을 썼고 무례하다는 얘기를 듣기도 한다. 왜 그러냐고 물을 때마다 나는 존댓말이 거리를 두고 반말이 거리를 좁히는 것 같이 들려서 그렇게 한다고 술자리 같은 자리에서 그렇게 얘기한다. 실제로도 그렇게 생각한다. 최근에는 나이가 한 3~4살 차이 나는 선배들한테도 반말과 존댓말을 거의 번갈아 가면서 하는 수준으로 사용한다. 이건 좀 반발을 많이 사는 것 같고, 아직 당사자들에게 해명을 진지하게 해본 적이 없어서 이 글을 써본다.

이런 나이 차에 따른 존댓말 사용을 진지하게 밥을 먹으면서 친한 친구 몇명한테 들려주었다. 이 말을 듣고 내 생각을 이해해준 친구들에게 고맙다고 하고 싶다. 나는 나의 이런 생각을 다른 사람들에까지 보여주고 싶다.

좀 더 구체적으로 한국어의 존댓말이 왜 마음에 안 드는지 설명하자면 크게 3가지가 있는 것 같다. 나는 언어학이나 한국어에 대한 사실상 없고 오직 경험에 의에서만 이 글을 쓰니 틀린 점이 분명 있을 것이다. (여러분들의 지적은 언제나 환영입니다) 또한, 이 생각은 최근에 유럽어를 간단히 배우면서 생긴 생각이라 정리가 잘 안 되어 있다.

첫 번째로 인칭이나 호칭을 부를 때 생기는 문제이다. 영어에는 다른 사람을 부를 때 you나 Mr./ Ms. 성이나 이름을 부르면 아주 간단히 해결된다. you나 Mr./Ms. 성으로 사람을 부를 때 격식, 비격식 상관없이 아무런 문제가 일어나지 않고, 조금만 친해져도 바로 이름을 부르는 것이 허용된다. 한국어에는 너나 당신 같은 대명사가 있지만, 너는 친구나 하급자한테만 쓰는 정도고 오히려 친한 친구한테는 이름을 더 자주 사용한다. 당신은 대부분 모르는 사람한테 거리를 두는 용도로밖에 사용하지 않는 것 같다. (아니면 부부나 연인 사이거나) 상급자한테 2인칭으로 부를 때는 이름을 부르는 것은 상상도 못 하는 문화이고, 누구누구 씨나 김 교수님도 무례하다고 취급받고, 보통 직업이나 관용어로 호칭을 사용한다. 교수님, 사장님, 선생님 등등. 가끔 북한의 동지나 동무가 영어의 you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되는 것이 부럽다. (나는 북한을 매우 싫어한다) 매번 사람을 부를 때 내가 어떤 인칭/호칭을 써야 되는지 고민해야 하고, 이는 상급자에게 말할 때 극히 제한되어 있다. you처럼 간단히 해결되는 문제도 아니다. 매번 의식하지 않고 이렇게 써왔지만, 이를 의식하게 되니 너무 불편하다.

두 번째로 존댓말을 할 때, 거의 문장의 모든 성분이 바뀐다. 앞에서 언급한 상대가 높임말로 바뀌고, 나는 저로 낮춰지며, 일부 수식어들은 높임말 형태로 바뀌며, 각 단어의 끝이나 문장을 마치는 말의 꼬리가 바뀐다. 최근 배우고 있는 독일어를 예로 들자면, du/Sie로만 존칭을 결정하고 기껏해야 동사의 문법상 굴절만 바뀌는 것이 전부이다. 주관적으로 한국어에서 이렇게 극존칭 현상에서 가장 웃긴 것이 상대만 높이면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나를 낮춰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독일어의 du/Sie는 한국어의 반말/존댓말과는 개념이 다르다. 한국어의 존댓말은 나와 상대의 위치를 고려하여 적용하는 반면 du/Sie는 상대와 내가 얼마나 가까운지를 적용하여 고려하는 면이 더 크다. 이 사실이 내가 반말/존댓말에 대한 생각과 정확히 일치하여 맘에 들었다. 이런 이유로 나는 존댓말은 공적인 자리에서 한국어로 수업이나 세미나를 할 때처럼 쓰이는 어투처럼만 쓰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존댓말은 그저 공과 사를 구분하기 위하거나 상대에 대한 간단한 존중만 나타내면 되지 왜 굳이 나를 낮춰야 하는가?

세 번째로 위에서 너무 상대를 높이고 나를 낮추는 현상에서 일어나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문제이다. 어떤 이유라고는 정확히 설명 못 하겠지만, 나는 언어가 사람의 생각이나 사상을 무시할 수 없는 만큼 지배한다고 생각한다. 사람과 대화를 하는 순간부터 존댓말로 상대와 나의 상하가 바로 결정된다. 보통 직업이나 나이로 이것이 결정되는데, 나는 이것이 전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선생과 제자는 그저 가르침을 받고 주는 사이이고, 나이는 그저 내가 얼마나 빨리 태어났는지에 대한 지표다. 나는 가끔 식당에서 나이 많은 사람이 종업원에게 불친절하게 반말하고 무례하게 구는 것을 볼 때마다 뭐라고 하고 싶다. 나는 그저 나이가 한두 살 많을 뿐인데 존댓말 듣는 것이 싫다. 어차피 학교 1~2년 차이로 들어왔고 나이 한두 살 차이가 뭐가 대수인가? 카이스트 내에서는 이런 현상이 조금씩 줄겠지만 아무리 친해져도 나이가 차이가 나면 친구가 아닌 형, 동생으로 취급하는 것도 싫다. 어린 사람은 형/누나/오빠/언니라고 부르고 반대로는 보통 이름을 부르는데 이것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이런 존댓말 반말 문화가 동등해야 할 사람들의 위치를 구분하는 것이 매우 싫다.

이 글을 읽는 사람이 나를 알고 있다면 아마도 높은 확률로 내가 누구인지 알 것이다. 나는 위에서 언급한 대로 한국어의 존댓말 체계가 싫고, 이를 바꾸기 위해서 작은 운동을 하려고 한다. 습관이나 분위기때문에 어렵겠지만, 오늘부터 나의 언어습관을 바꾸려고 한다. 지금까지 나이가 어린 친한 사람한테만 반말을 쓰라고 권했지만, 이제는 위로도 5살 차이 이내이고 잘 아는 사이이면 과감하게 반말을 쓸 것이고, 어린 사람에게도 나한테 반말을 할 때까지 존댓말을 그대로 맞춰서 쓸 것이다. 나를 용서하고 이해해주길 바란다.

댓글에서는 아주 대차게 까이고 있던데,  과감하게 반말을 쓰자는 부분을 제외하고서는 매우 공감한다. 그리고 이 문제와 관련된 논문을 친구에게 소개받아 읽어봤는데, 재밌는 구석이 몇 부분 있어서 정리해본다.

정대현 교수가 든 엘리베이터 예에서 정대현 교수가 어린이에게 “야, 너 몇 학년이냐?”라고 물었는데, 그 어린이가 이에 대한 대답으로서 “난 2학년인데, 너는 몇 살이니?”라고 말했다고 해 보자. (중략) 정대현 교수는 “반말은 상하 관계의 위계 안에서 발생하는 것”이라고 말하지만 이런 상황에서의 반말은 오히려 상하 관계를 파괴하는 말이다.

결국 필자가 보기에, 계층 구조의 존재를 전제하는 것은 반말의 사용 자체가 아니라, 높임말과 반말의 비대칭적 사용이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노(老)신사가 어린아이에게 “너 몇 학년이냐?”라고 반말을 사용했을 때에 그 반말 사용은 고립적인 방식으로는 정당하지 않다고 비판될 수 없다. 그것이 정당하지 않은가 여부는 그 노신사의 언어 사용을 보다 전체론적(holistic)으로 보았을 때에 평가될 수 있다. 그것은 예를 들어 그 어린이가 “난 2학년인데, 너는 몇 살이니?”라고 반문했을 때에 그가 그것을 수용할 자세가 되어 있는 방식으로 그의 언어 사용의 총체가 주어져 있는가 아니면 비록 자신은 반말을 했지만 상대방으로부터는 높임말을 기대하는 방식으로 그의 언어 사용의 총체가 주어져 있는가에 의존한다.

예를 들어, 친소 관계에 따라 매우 가까운 사람끼리는 반말을 쓰고 그렇지 않은 사람끼리는 높임말을 쓰는 식으로만 높임말과 반말이 사용되면서 그것들이 화자와 청자 사이에 완전히 대칭적으로 사용되는 경우는, 계층 구조를 반드시 정제하는 것은 아니라고 볼 수 있다.

뭔가 나의 생각을 명쾌하게 글로 표현해 놓은 것 같아서 읽으면서 속이 시원했다. 역시 상식적인 사람이라면 이러한 결과에 이를 수밖에 없다.

글을 잘 쓰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점은 전자는 생각도 명쾌하며 글도 명쾌하지만, 후자는 생각이 명쾌해도 글자로 옮기려는 순간 다 일그러져 버리는 것에 있지 않나 싶다. 생각이 다 일그러져버리니 글을 쓰기가 싫고, 글을 쓰지 않으니 글이 늘지 않는 악순환에 빠진다. 이 악순환을 끊는 첫 발자국이 되기를 기원하며 글을 마친다.

사진 출처: http://storyball.daum.net/episode/15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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